분수에 맞게 입고 한도에 맞게 들자
분수에 맞게 입고 한도에 맞게 들자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겠다면 이 한 문장을 기반으로 삶을 살아나가면 썩 괜찮은 삶을 살아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함. 본디 인간은 탐욕의 동물이라서 본인 분수에 맞는 것에는 당연히 만족하지 못함, 성에 차지 않음. 본인이 가질 수 있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상위 단계의 것을 바라보고 원하는게 인간의 본성임. 이게 잘못된 것이 아님. 헌데 이러한 본성이 발현됐을 때 한 사람은 본인의 분수를, 한도를 키우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보는 반면 다른 한 사람은 그저 누워서 나는 왜 그걸 갖지 못하는걸까, 나는 왜 이 정도까지밖에 가지지 못하는 걸까 라며 한탄을 하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겠지.
누워서 한탄하는 사람이라면 갱생의 여지가 있음, 이러한 사람이라면 누군가 열심히 노오력해서 분수, 한도를 키운 케이스를 직간접적으로 보면 `어? 되네?, 나도 할 수 있겠네?` 라는 생각을 기반으로 일어나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거든. 근데 누워서 한탄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라며 리볼빙, 대출 따위의 것을 건드려가면서 분수를 넘어서는, 한도를 넘어서는 것들을 건드리기 시작하면 이건 갱생의 여지가 없어지는, 인간 생태계에서 최하층, 바닥, 꼬리칸을 담당하러 가는 길이 되겠다.
누군가는 아래를 바라보고 안도를, 위를 바라보고 질투를 하는데 다른 누군가는 아래를 바라보고 감사를, 위를 바라보고 열정을 느낀다. 어떻게 인생을 살아갈 것인지는 본인 선택인 것임. 내가 흙수저다? 그럼 내 자식한테 금수저는 아니어도 동수저 정도는 물려줄 수 있음. 동수저 물려받은 자식이 다음 자식, 내 기준 손주한테는 은수저 물려주면 되는거고, 그렇게 큰 시계열을 바라보고 큰 그림을 그려보는 것도 인생의 방향성을 정하는데에 썩 도움이 되는 방법이니까 시도해보는 것 추천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