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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할머니는 꼽추였다.
굳이 구구절절 각도를 이야기해보자면, 90도까지는 아니었고, 60도? 정도 휘어있었던듯.
왜 꼽추였는지는 모름, 궁금한 적도 없었고.
지금도 궁금하진 않다.
생각해보니까 왜 지금까지도 궁금하지 않은지, 궁금해하지 않은지가 궁금하긴하다.
어렸을 때 부터 싸가지가 없었던 나는
등이 휘어 허리도 제대로 피지 못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썩 거북했다.
할머니 집에서 풍기는 그 특유의 냄새도 싫었다.
할머니 집은 밥도 맛이 없었다.
할머니 집엔 장난감도, 게임기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집에 가는 것이 싫었다.
근데 뭐 어린놈이 뭐 어쩌겠어, 부모님이 가자면 가야지.
할머니댁에 들어가면 할머니는 언제나 날 반겨주셨다.
활짝 웃으며 우리 강아지 새끼 왔냐고, 밥 먹었냐고,
이것 저것 물으며 날 반겨주시는 할머니에게
대충 네네 인사를 드린 후 부모님한테 용돈을 받아 PC방으로 달려가곤 했다.
왜냐하면 할머니집은 냄새나니까.
할머니집엔 재미있는게 없으니까.
할머니는 재미없으니까.
바쁘디 바쁘게 살아가는 와중에 종종 할머니가 생각난다.
안방에서 엉거주춤 걸어나와 활짝 웃으며 날 반겨주던 우리 할머니.
할머니와의 별다른 추억은 없다.
그저 안방에서 굽은 허리 끌고 걸어나오다가 날 보며 활짝 웃는 그 할머니의 모습만 뇌리에 박혀있다.
할머니는 내가 뭐가 그리 좋았던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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